용담1동

제주향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서문로 47

제주향교는 1392년(태조 원년) 현유의 위패를 봉안·배향하고, 제주민을 교화·교육하기 위해 창건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았고, 교수관 1명이 정원 70명의 교생을 가르쳤다.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향교의 운영은 전교와 장의 등이 담당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

서자복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 용연계곡 동쪽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동한두기의 절동산이라는 언덕에 있는 서자복의 자리는 고려 때 해륜사, 일명 서자복사라는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18세기 중기경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1910년경에 용화사라는 사찰이 세워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서자복은 용화사 경내에 놓여 있다. 서자복은 서미륵이라 부르기도 한다.

서자복은 바닷가와 인접하고 있는데, 이 마을의 주민들은 해상 어업의 안전과 풍어, 출타한 가족의 행운을 빌면 효험이 있다 하여 치성으로 제를 지내고 있다. 서자복은 불교 신앙과 민간 신앙이 결합되어 길흉화복을 가져다주는 미륵 신앙의 대상물이 되고 있다.

용연·용두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과 용담2동의 경계에 있는 못과 바위

2001년 3월 7일에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57호로 지정되었다.
유로 길이 16㎞의 한천은 하류에서도 유수가 보이지 않는 건천이다. 한라산 북쪽 산록을 흘러내리는 한천에는 하방침식으로 협곡구간이 많이 출현하는데, 하구에도 높이 15m의 협곡구간이 발달한다. 하상의 용천수와 섞인 해수가 하구의 협곡을 채워 물이 흐르는 계곡 경관을 만들기 때문에 하구를 취병담(翠屛潭), 용연(龍淵) 또는 용소(龍沼)와 같이 소를 뜻하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용두암(龍頭岩)은 용암수로(lava channel)의 벽면이 파랑의 침식작용으로 제거되면서 용머리처럼 만들어진 암괴지형으로서, 두껍게 흐른 아아(aa) 용암류로 만들어져 높이가 10m에 이른다.
용두암 주변에도 파식으로 제거되어 단편만 남은 용암벽 지형들이 바다 쪽으로 뻗어 있다.

서문공설시장

제주 제주시 서문로4길 13-2

서문시장은 1960년대 현 용담주유소 자리에 서부시외버스터미널이 들어서면서 제주시 서부 지역의 대표적인 시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삼담파출소 남쪽과 적십자회관 일대 사이에 민속오일시장과 제주중학교 서쪽 일대에 반짝시장인 동룡시장(일명 도깨비시장)이 들어서면서 세 시장 간 연계성을 띠어 활기찬 상권으로 발전하였다.

1967년에 제주 지역 내 서부 지역으로 운행하던 서부시외버스터미널이 제주시 광양공용터미널로 신축, 이전되면서 서문시장은 침체되기 시작하였다. 1971년에도 옛 오현고등학교 자리에 중앙종합매일시장이 들어서자 서문시장의 상권은 동문시장의 상권과 더불어 조금씩 분산되었다.

서문공설시장은 대지 면적 1,904㎡, 매장 면적 1,636㎡이며 지하 1층, 지상 4층의 주상 복합 건물로 되어 있다. 지하 1층에는 간이음식점 등이 있고, 지상 1층과 2층에는 과일 상점과 잡화점 등이 자리하고 있어 다른 상설시장과 비슷한 소규모의 지역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지상 3층과 4층은 아파트로서 상인들이 입주하고 있다.